문화사랑카페에서 가져온 글
향토문화사랑 모임의 올해 첫 답사를 다녀왔다.
성주군 한개마을....
사전 네이버에서 파악한 자료는 다음과 같다.
<2007년 12월 31일 중요민속자료 제255호로 지정되었다. 영취산 아래 성산이씨가 모여 사는 전형적인 집성촌으로 조선 세종 때 진주 목사를 지낸 이우가 처음 자리잡은 후 대를 이어 살아왔으며 현재 월봉공 이정현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에 지어진 100여 채의 전통 고가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각 가옥들이 서로의 영역을 지켜가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풍수지리설로 보아 영남 최고 길지로 꼽히며, 조선 영조 때 사도세자(장헌세자)의 호위무관을 지낸 이석문, 조선 말의 유학자 이진상 등 명현을 많이 배출하였다.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된 건조물과 민속자료 등이 많이 있는데. 월봉정, 첨경재, 서륜재, 일관정, 여동서당 등 다섯 동의 재실이 있고, 이석문이 사도세자를 그리며 북쪽으로 사립문을 냈다는 북비고택, 이진상이 학문을 닦던 한주종택, 20세기 초 목조 건축인 월곡댁,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교리댁 등이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이 마을의 담장은 대부분 토석담장이며 극히 일부분이 돌담장이다. 토석담은 황토와 자연석을 번갈아 얹어 정결하게 쌓았으며, 비탈을 따라 구불구불 펼쳐진 담장의 전체 길이가 3.3km에 달한다. 바깥쪽 담은 마을의 가옥이 대부분 경사지에 지어져 산지와 면한 쪽과 가옥의 옆쪽 담은 높고, 가옥의 앞뒤 쪽 담은 낮다. 안쪽 담은 건물의 처마보다 낮다. 이 마을의 담장은 전통 한옥과 조화를 이루면서 잘 보존되어 있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다.>
이번 답사여행 동행은 최근 들어 가장 단출하였다.
선생님 두 분은 선약이 있어서, 홍사는 갑작스런 제주도 행으로 빠지고
회원 3분은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함께 하지 못했다.
약속장소에 한참 늦게 도착한 허 선생은 감기몸살로 고생하였고
결국 선석사, 세종대왕자 태실, 성밖숲 탐방은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한개마을 안내소에는 두 분이 계셨는데 그 중 공무원으로 정년퇴직 후
문화관광해설사로 봉사활동 중이신 최상백 님이 자청하셔서 안내를 받게 되었다.
한개마을 입구에서 ‘동구’란 말의 의미와 동요로 시작하여
작년에 새로 지은 초가집에서 해설을 시작하셨다.
한옥의 특징인 온돌, 사랑채, 안채, 사당채, 정지의 효용 등 전반적인 설명으로 시작되었다.
온돌문화의 특성을 살린 한국형 보일러가 중국, 일본으로 확산되기를 바라시는 해설사의 자부심과 애국심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1798년부터 1858년 사이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진사댁은
사실 우리 전통의 택호 호명 방식으로 따지면 예안댁이 맞음에도
진사댁으로 설명문이 붙은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출세의지,
공명심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 않나 싶었다.
진사댁에는 현재 주민이 거주하고 있어
예전에 몇 번 왔을 때는 들어가 보지를 못하였는데
해설사와 함께 하니 마음대로 둘러볼 수 있어 좋았다.
장독대에 가지런한 장독이 정취 있었고
계자난간은 어디에도 비할 바 없는 작품이라 설명 들었다.
이중창호는 습도 조절과 보은기능을 하는데
그 너머로 벽장과 비장고 등 나무문 3개가 이채로웠고
경상도 반가에서는 유일한 만자 무늬 문도 이색적이었다.
또한 벽에 가지런히 달아놓은 키, 광주리, 채 등도 정겨워 좋았다.
총 연장 6km에 달한다는 토석담은 100년도 넘게 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는데
게으른 인부가 튼튼한 담장을 짓는다는 설명에서
빨리빨리병에 걸린 우리에게 웅변하는 바를 느낄 수 있었다.
한 줄 쌓고 쉬고 한 줄 쌓고 놀고 하니 흙이 잘 말라
단단한 토석담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
북비고택에서는 정승이 두 분이나 나와 대문에 홍살문이 보이는데
북비란 북쪽에 난 작은 문을 의미하며
사도세자의 죽음을 애통해 한 호위무관이 낙향하여
사도세자를 기렸다는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그 충절 덕분인지 많은 과거급제자가 났다고 한다.
여기도 장독대가 압권인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정원 형태와 나무 다듬은 모습이 왜색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월곡댁은 한개마을 뿐 아니라 인근 지역에서까지 제일 부잣집으로
후손이 없어 5촌집에서 양자를 들였는데
그가 삼성생명 회장인 이수빈이란다.
총연장 700m에 달한다는 돌담
한주종택은 1767년 건립하였고 1866년 개축하였다는데
성리학자인 한주 이진상의 집이란다.
문 돌쩌귀에 가림막 기우는 홈, 툇마루 다리의 특이한 형태가 눈길을 끈다.
계자난간이 보이고 연륜이 묻어나는 소나무, 버드나무,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멀리서 지나치며 본 극와고택
다시 동구에 와서 오늘 해설 해 주신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주시며
영취산 중턱에 있는 감응사의 감로수를 설명하시는데
봄이 되면 다시 차근 차근 둘러보고 특히 감응사에 올라가
감로수를 맛봐야겠다 마음 먹었다.
노익장을 과시하신 해설사님의 2시간여 해설 덕분에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제대로 보려면, 느끼려면 4시간으로도 부족하리라.
몇 번이고 해설사님께 감사하는 인사를 드리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맛집 왜관식당으로 가서 청국장과 촌두부를 먹었다.
촌두부와 청국장의 구수한 맛, 정갈하고 맛깔난 밑반찬에 반해
어른들은 물론, 우리의 마스코트 소피아까지 콧노래를 부르며 맛있게 먹었다.
밥도 두 그릇이나 더 시켜 나누어 먹을 정도로 모두에게 즐겁고 푸짐한 식사.
나오면서 비닐에 소포장되어 있던 비지를 무료로 하나씩 가져나왔다.
시청으로 돌아와 감기로 힘들어하였던 허 선생은 먼저 귀가하시고
우리 일행은 시청 앞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셨다.
회장님이 사 주신 커피와 함께 먹은 쿠키도 맛이 넘쳤다.
소피아 모녀의 미소가 만족의 정도를 표현해주는 듯....
답사를 마치고 정리 하면서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은
해설사로부터 설명들은 토속담의 길이는 6.7km였는데 네이버에서는 3.3km.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온 걸까? 나는 해설사님의 해설을 믿는다.
현지에서 활동하시는 분이므로.
그리고 인터넷의 모든 정보가 진실은 아니므로...
참석 인원은 적었지만 맛깔난 해설과 맛있는 식사,
거기다가 커피숍에서의 커피 한 잔으로 우리의 이번 답사는 만족도 120%.
다음 달 모임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이장균선생님글-